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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이주기(해외에서 아프면 안되는데 2008.04.25)

진두-볼레리 2022. 12. 29. 07:37

병이 나다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가량 되었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지쳤습니다. 집에 누워 있어도 전과 다르게 심장이 콩콩 뛰었습니다. 몸은 자꾸만 처져 내렸고 조금만 무리해도 물에 젖은 솜처럼 축축 쳐졌습니다.

 

가슴이 아프다는 건 큰일이었습니다. 감기도 아니고 배탈, 몸살도 아닌 심장이었습니다. 심장의 이상은 왜 아픈지 원인을 찾아내는 데에만도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 외국에 와 있습니다. 내 증상을 정확히 전달하기도 어려운, 의료체계나 수준도 잘 모르는,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외국에 와 있는 것입니다. 이는 내게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나는 그 걱정을 아내에게 말도 못 하고 한 달을 혼자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쿠안탄(Kuantan)로 이사 온 후 쇼핑을 하다가 근처에 병원이 있는 걸 보았습니다. 심장의 이상은 큰 병원에 가야 정확한 진단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한 번 진찰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의사는 내 눈을 뒤집어 보고, 혀를 내밀어 보라고 하더니 청진기를 들이댔습니다. 그리고는 '저혈압'이라고 했습니다. 처방은 간단했습니다. 약 일주일치와 함께 잠 많이 자고 잘 먹고, 간단한 운동 하라고 하더군요. 나는 가슴을 쓸며 병원문을 나왔습니다.

 

원래 혈압이 낮았었는데, 지난번 코타바루에 가 매니저 수업을 받으면서 더운 날씨로 인해 잠을 못 자고, 또 매 끼니를 사 먹다 보니 제대로 먹지 못해 체력이 떨어지면서 혈압도 같이 낮아진 게 원인이었습니다. 지금은 타 온 약 꼬박꼬박 먹으면서 아내가 해주는 밥과 싱싱한 열대과일, 그리고 생선을 많이 먹어 좋아지고 있습니다.

 

 

가장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외국에 나와 있는 사람에게 건강은 최고의 가치입니다. 건강을 해치는 순간 모든 게 물거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건강이라는 게 시와 때를 가려 중요하고 안 하고 한 건 아니지만 특히 외국에 나와 있을 때의 건강의 가치는 더 절실합니다. 그것은 모든 바람막이가 걷힌 허허벌판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있다면 병이 생겨도 견딜 수 있는 바람막이가 있습니다. 의료보험이 있고, 장기 입원해야 한다면 휴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병이 들어 경제적 활동을 못한다 해도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바람막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건강을 회복하여 경제활동이라는 정상적인 생활권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외국은 그런 바람막이가 없습니다. 병이 들어 몸져눕는 순간 우리 가족은 냉혹한 현실 앞에 그대로 노출되고 마는 것입니다. 즉, '우리 가족'이라는 틀이 붕괴는 아닐지라도 심각하게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그것이 깊어지면 결국 가족이 붕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건강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지난 한 달간의 심장에 대한 고민은 꽤 큰 것이었습니다.

 

외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사표를 내기 전에 내 건강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바람막이를 걷어 내기 전에 내가 찬바람을 맞고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술은 조금 마시지만 폭음을 하는 수준은 아니고, 담배는 끊은 지 오래되었으니 크게 걱정할 바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체력이 그리 뛰어난 것도 아니고 담달리 건강체질도 아니었으니 건강을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 종합검진을 받았습니다. 직장에서 격년으로 종합검진을 받지만 그걸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돈을 들여 건강검진을 받는 나를 보고 아내는 '*칠할 때까지 살라고...'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건강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가장의 건강'이었습니다.

 

외국으로의 이주를 생각하시는 분들은 무엇보다 건강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특히 이곳 말레이시아로 이주하시려는 분들은 건강에 특히 유념하여야 합니다. 더운 날씨는 체력을 급격히 떨어트립니다. 한국에서의 노동시간과 강도를 생각하고, 특히 외국에 왔으니 더 독하게 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리하다가는 건강을 크게 해칩니다.

 

클리닉
말레이시아에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병원, 클리닉

 

2022년 12월 현재 말레이시아는

*이 글을 쓴 2008년부터 몇 해 동안 위와 같은 증상이 계속되었다. 그것은 큰 고통이었다. 몸 안에 에너지가 쌓이질 않았다. 똑똑 떨어지는 물을 겨우 받았지만 한 번 쓰고 나면 비고 마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콸콸 쏟아지는 물을 큰 통에 받아 펑펑 쓰는 그런 건강을 갖고 싶었지만 회복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회복되었지만 당시의 고통은, 이것이 회복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불안했던 것이다.

*말레이시아서 아프면 병원비가 상당히 든다. 우리는 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원비는 다른 물가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그래서 개인 보험에 들어야 한다. 3~4인 가족이 보험에 들려면, 보장에 따라 다르지만 1년 3~5천 링깃 정도 든다.    

*과거를 돌아보니, 내가 잘못 사는 이유, 즉 부자가 되지 못한 이유를 알겠다. 이주기를 시작한 이후 내내 돈 걱정을 하며 살았다.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아낄까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 그 이전에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하니 부자가 못 되었다. 가진 것을 모두 움켜쥐어도 결국은 한 줌 밖에 안 되는 것을 그 안에서 아등바등 살았으니 부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이 성향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부자가 못 되었다. 이제 얼마 안 남은 시간, 나는 혁명 같은 변화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