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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이주기(2008.03.04)

진두-볼레리 2022. 12. 26. 10:15

'한국에 가고 싶다'

 

오늘 아침 작은 아이가 내게 한 말입니다.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면서 학원입구에서 아이이게 물었습니다. "학원 재밌니?" "재미없어요." 그러면서 혼잣말처럼 말했습니다. "한국에 가고 싶다. 친구들도 보고..." 내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였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고 그저 엘리베이터 앞에서 작은 아이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문이 닫히고 작은아이가 내려야 할 '2'에 엘리베이터가 멈춘 후에도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어제, 일요일이었습니다. 지난주 티아라두타 콘도미니엄 안에 있는 작은 공간에서 축구를 했던 아이는 이번주에도 축구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토요일에는 비가 많이 내려 공원에 아이들이 없었고, 어제는 맑은 날씨여서 오후가 되자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작은 아이에게 지금 나가서 아이들과 어울리다가 축구를 할 때 즈음 끼워달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말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I want play!'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갔습니다. 티아라두타 콘도미니엄 

 

티아라두타-콘도미니엄
암팡에 있는 티아라두타-콘도미니엄

 

아이가 나간 후 나는 창문으로 밖을 보았습니다. 티아라두타 콘도미니엄에 있는 작은 녹지 위에는 벌써 몇몇 아이들이 축구공을 가지고 공원에 모여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어디 있나 찾아보았는데, 커나란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무 근처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서 그 아이들 틈에 끼어 공을 차주기를 기다렸지만 아이는 그렇게 한참을 주변에서 바라만 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는 결국 돌아서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이가 스스로 해결하기를 바랐습니다. 말이 안 통해도 그냥 끼어들어가 놀이를 하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냥 돌아서는 아이를 보며 더 참지 못하고, 내가 소리를 쳤습니다. "한결아, 아이들에게 축하고 싶다고 말해, I want play!'라고 말이야!"

 

그러고는 나도 내려갔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하면 더 좋겠지만 그러하지 못하니 내가 조금 도워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려가 보니 아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축구하자고,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하지 그랬어?" "그랬는데, 애들이 'No'래요." "그랬어? 아빠가 좀 도와줄게." 나는 그중 키가 큰(열서너 살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도 축구하고 싶어 하니까 좀 끼워달라고, 하지만 아이는 영어를 잘 못하니 이해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 아이는 "OK"하였습니다. 나는 작은 아이를 불러 그들의 놀이 공간으로 들여보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 아이보다 작아 보이는 아이가 공을 끌어안고는 한쪽에 주저앉는 것이었습니다. 보니 그 아이가 공의 주인인 것 같았고, 그 아이는 우리 아이가 들어오는 걸 싫어했습니다. 보다 큰아이들이 그 아이를 설득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말레이시아어로). 잠시 후 그 아이도 일어서고 하여 편이 갈리면서 축구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그다지 편치 않은 맘으로 방으로 올라왔습니다. 와서도 창밖으로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이는 공을 따라다니기는 하지만 많이 차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그만이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지켜보니 아이들은 우리 아이에게는 공을 주지 않았습니다. 패스도 하지 않고, 드로잉도 시켜주지 않았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우리 아이는 '왕따'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매우 속상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아이가 느끼고 있을 실망감과 소외감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담함이죠. 부끄럽고 화가 나는 그런 상태말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우리 아이한테도 공을 주라는 말은 할 수 없으니까요. 결국 조금 있다가 우리 아이는 신발을 신고 놀이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고 말았습니다.

 

방으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나온 아이에게 왜 공차다 말고 먼저 들어왔냐고 물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Out!이라고 말해서 집으로 왔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 대신 공을 다른 아이가 왔으니 너는 빠지라고 했다는 겁니다. 나는 이번에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말았습니다.

 

"한국에 가고 싶다..."

말레이시아에 온 지 5개월째입니다. 사실 요즘 이곳에 온 것을 조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힘듭니다. 파라다이스일 것이라는 환상이 깨진 지는 오래이지만 파라다이스에서 떨어져 현실이 되었고, 점점 더 추락하여 지옥 근처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거리를 나설 때마다 느끼는 긴장감과 공포, 잠을 잘 때에도 누군가가 방문을 따고 들어올 것만 같은 불안감, 사업은 마치 정글을 뚫고 나가는 것과 같은 어려움의 연속입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낯선 이국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내는 속에 담긴 이야기를 터놓고 말할 벗이 없어 우울해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생활에서 벗어나는 순간 적자생존의 밀림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정말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는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설령 내가 정말 지옥에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내가 잡고 있는 것이 썩은 동아줄이라 해도 나는 그것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수없이 많은 고통과 역경을 지나서 이곳까지 왔습니다. 희망이 내게서 떠나가는 것은 오직 내가 그 끈을 놓았을 때뿐입니다. 썩은 동아줄일지언정, 끊어진 것일지언정 내가 놓지 않으면 그 끈은 내 손안에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 가고 싶어 하는 작은 아이를 한국에 보낼 것이지만, 그것은 지금은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있고, 해야 할 공부가 있습니다. 친구를 사귀지 못한 우리 작은 아이를 나는 매일 꼭 안아주면서, 녀석의 작은 눈을 들여다보면서 말할 것입니다. "괜찮아, 너는 할 수 있어." "아빠는 너를 믿어." 나는 정말 우리 작은 아이가 지성과 겸손을 겸비한 훌륭한 성인으로 자랄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티아라두타-콘도미니엄
티아라두타-콘도미니엄

 

 

2022년 12월 현재 말레이시아는

*우리는 티아라두타에서 3개월 도 채 못 살고 이사를 하였습니다. 쿠안탄에서 빅** 도넛 사업을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온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말레이시아의 월세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집주인이었던 그분들에게 많이 죄송하군요.

*아들은 말레이시아에서 어렵게 공부했습니다. 쿠안탄에 있는 페이차이 공립학교 입학하여 중국어, 영어, 말레이어 쫓아가는데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공립학교 졸업 후 국제학교에 입학하여 즐겁게 공부하였습니다. 지금은 군대 제대 후 취직하여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