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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이주기(말레이시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200711.21)

진두-볼레리 2022. 12. 15. 00:08

말레이시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다

비행기 값을 아끼기 위해 일본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거의 배 가까이 차이 나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멀리 돌아가는 편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항으로 가면 6시간 남짓 걸리는 비행시간이 무려 11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일본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포함된 것이기는 하지만 새벽 4시에 나와서 밤 9시에 도착하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다행히 일본 항공기인 JAL에 영화가 많아 지루하지 않게 올 수는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만화영화와 게임을 하면서 말레이시아까지 왔습니다.

 

난 비행기 안에서까지 내가 한국을 떠나 말레이시아로 온다는 걸 실감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들과 함께 먼 여행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차이는 긴장감의 차이였습니다. 낯선 외국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또 아내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긴장감이 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가진 것 많지 않고, 직업도 보장되어 있지 않는 말레이시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조차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토록 오지 않던 긴장과 실감은 비행기에서 내려 말레이시아 공항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뻑뻑하도록 밀려왔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안으로 들어서자 말레이시아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르는 순간, 나는 이제 정말 말레이시아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냥 말레이시아에 왔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젠 정말 이 낯선 나라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긴 실감이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과 아내에 대한 책임감이기도 했습니다. 내 선택에 의해 함께 온, 그리고 앞으로 올 아내에에게 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지요.

 

말레이시아 이주를 생각하게 된 동기

말레이시아로의 이주를 생각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직업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그 불만이라는 것은 여러가지가 섞인 복잡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곳에나 있는 상사와의 갈등도 그중 하나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고... 성취감이 없었다는 게 옳은 표현일 듯싶습니다. 사람이 어찌 돈만 갖고 살겠습니까. 일을 하면서 그 일이 즐겁거나 아니면 적어도 하는 동안은 힘이 들어도 끝나고 나서 뭔가 보람이 있어야 하는데, 날마다 고역이었습니다. 보람도 없고 성취감도 없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직장이라는 게 삶을 너무나 삭막하게 만들고 사람을 늙게 만들더군요.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일치하는 것인데, 그토록 일치할 수는 없어도 뭔가 보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인 액수가 나오는 안정은 좋지만 그것을 위해 내 인생을 바쳐야 한다는 건 참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나에게 익숙한 것들로부터요. 익숙한 것이 편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지요. 새로운 것을 할 필요가 전혀 없으니 그냥 그렇게 편하게 살다가 늙는 것 아니겠습니다. 난 그렇게 늙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직 내게 남은 인생은 길고도 기니까요. 이제 전체의 1/2을 살아온 나는 나머지 인생을 다르게 살고 싶었습니다. 안정된 직장에서 개성 없이 자신을 매몰시켜 살아가는 그런 매가리 없는 삶 말고 뭔가 드라마틱하고 긴장되고 감동이 있는 그런... 아, 그래 감동이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내 몸을 꺼내 아주 낯선 환경 속에 풍덩 던져 놓고는 거기서 헤쳐 나오는 걸 지켜보는 겁니다. 그것이 매우 힘들다는 걸 알지만 힘들어야 힘이 나는 것이겠지요. 나는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는 언어를 배워야 하고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배워야 합니다. 나른한 게으름과 안주에 빠져 있는 모습보다야 이게 훨씬 아름답고 가치있지 않겠습니까.

 

 

2022년 12월 현재 말레이시아는

*후반부 직장 관련된 부분을 다시 읽으며, 말레이시아에 막 도착했을 때의 나의 감정이 매우 불안정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나 있군요.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억지로 강변하고 있습니다. 많이 부끄럽고 후회됩니다. 이것을 옮기지 말까 잠깐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런 감정마저도 이주기에 포함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옮겨놓습니다. 

 

비행기에서-내려다보이는-말레이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