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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이주기(빅**도넛 직원들과 함께 2008.03.28)

진두-볼레리 2022. 12. 27. 19:39

 

오늘 인도네시안 직원 중 ‘보워’라는 친구에게 영어책을 사주었습니다. “I’m a boy.” 수준을 조금 넘은 초급 영어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받아 든 보워는 무척이나 고마워했습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가지고 온 영어책으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산 CD Player를 귀에 꽂고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며 영어공부를 하고 있을 때, 숙소에는 다른 직원들은 다 매장으로 가고 휴일인 보워와 그의 친구 와유리만 남아서 눕고나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화 도중에도 가끔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곳의 다른 인도네시안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시간이 나면 그저 잠을 자거나 이야기하거나 밀린 빨래를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책 한 권 읽는 걸 볼 수 없는 그들의 시간이 내겐 너무나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그 둘 중 보워는 영어를 아주 조금 할 줄 압니다. 간단한 단어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와우리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영어를 배워라. 영어를 못하는 지금 너희의 월급은 1,000 밖에 안되지만 너희가 영어를 할 줄 알게 되면 월급이 1,500이 될 것이다.’ 둘은 눈을 반짝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오늘 보워에게 물었습니다, 영어를 배우고 싶냐고. 그는 ‘Yes.”하고 답했습니다. 나는 보워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 그가 고른 영어책과 사전을 한 권 사주었습니다. 책을 사가지고 내려오자 보워보다도 다른 직원들이 더 놀랐습니다. 왜 내가 보워에게 영어책을 사주었는지 의아해했습니다. 보워는 봉투에 싸인 영어책을 자기 라커에 넣고 잠갔습니다.

 

보워에게 사 준 책 값은 18링깃이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5천 7백원 정도이니, 한국에 있으면 한 끼 식사값이었고, 말레이시아의 노동자라면 이틀 정도의 식사를 할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리 큰돈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에 있는 10여 명의 직원 중 아무도 책을 사지 않았던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게서 책을 받은 보워 역시 그만한 돈이 없었던 건 아니었으니, 내가 보워에게 준 것은 책이 아니라 ‘생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소개한 책 ‘청소부 밥’에 ‘소비하지 말고 투자하라’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곳 코타바루에서 생활하면서 하루하루 밥 사 먹고 이런저런 생필품 사야 하는 게 너무나 아까워 하루 한 끼만 밥을 사 먹고 두 끼는 도넛으로 때우기도 했습니다. 한 끼에 보통 5링깃 정도 하니 18링깃을 모으기 위해서는 4끼를 도넛으로 때워야만 하는 돈이었습니다. 내가 보워에게 책을 사준 돈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였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투자가 내게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다줄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갈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무위로 끝나버릴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크고 작은 투자들이 결국은 내게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돌아온다’라는 것은 꼭 금전적인 것만이 아니라 내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는 그런 결과일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일을 끝내고 와 보니 일이 먼저 끝난 와유리가 영어책을 꺼내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책을 사 준 것은 보워였는데, 먼저 일이 끝난 와유리도 그 책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어 문장 밑에 까맣게 자기 나라 말을 적어놓고 더듬더듬 읽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와유리에게는 좀 더 쉬운 영어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미 나는 내가 투자한 결과를 얻고 있어 너무나 기분이 좋습니다.

 

보워와-와유리
보워와-와유리

오른쪽이 보워, 왼쪽이 와유리입니다. 22살 젊은 인도네시아 청년들입니다. 2008~2009년 빅** 도넛 매장에서 함께 일했지요

 

 

 

2022년 12월 현재 말레이시아는

*2022년에 와 과거의 글을 읽으니 많이 부끄럽습니다. 내가 그들을 너무 측은하게 본 것은 아닌지. 동등한 입장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각으로 대했던 것 같습니다. 부끄러워도 있었던 과거이니 현재에 와 나눔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