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공립학교 입학통지서
어제 늦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우편물들을 찾아왔습니다. 아침에 하나씩 열어보는데, 그중 하나가 아이의 입학승인서 같습니다. '같습니다'라고 한 건 말레이시아어로 쓰여 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입니다. 하지만 영문으로 아들과 내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교육청으로부터 입학승인서가 나온 게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절차상으로 보아 쿠안탄 교육청에서 온 것이니 이는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교육부에 가서 승인서를 찾아가라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오늘 입학통지서를 받은 것입니다. 처음 쿠안탄교육청에 갔을 때, 2~3 달은 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기간이 일반적인 것입니다. 즉, 서류 접수해 놓고 처리될 때까지 마냥 기다리면 2~3 달 뒤에나 승인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여유 있게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방으로 뛰어다녔고, 반가운 통지서를 받아 들었습니다.
나는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의 학교 입학에 매달려왔습니다. KL에 있는 라이밍 공립학교에 입학시켜려하다가 좌절했고, 쿠안탄에 내려와서도 되지 않는 영어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레이어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서류를 만들어 제출하였습니다. 한 번 가도 될 관공서를 두서너 번씩 가야 했습니다. 절차와 내용을 모르니 작은 것 하나라도 잘못되면 또 고쳐서 가고, 하나라도 누락되면 또 만들어 갔던 것이지요. 그렇게 해도 될 것이란 확신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중국계 공립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아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죠(당시 9살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처음 온 2007년 11월, 준비된 것이 없었기에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집을 구하고, 사업을 찾고, 아이들 학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말레이시아에서 본격적으로 살기 위한 기본적인 문제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집은 콘도미니엄을 얻었고, 사업은 빅** 도넛을 시작했고, 큰 아이는 코타바루(Kota Bahru)에 있는 소피아 국제학교에 입학하였고, 오늘 작은 아이의 중국계 공립학교의 입학통지서를 받았으니, 큰 문제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2007년 9월 하순에 문득, 말레이시아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10월에 사전답사를 와 일주일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11월에 말레이시아에 발을 디뎌 오늘 2008년 5월이 되었으니 6개 월 만에 모든 일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안도감과 함께 앞으로 살아가야 할 걱정이 함께 옵니다. 그럼에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쉽지 않을 것이지만 쉽지 않은 길을 왔으니, 또 그렇게 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22년 12월 현재 말레이시아는
*그렇게 시작한 말레이시아 생활은 2021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다 학업을 마치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내와 나의 노후만 잘 준비하면 됩니다. 벌써 준비되어 있어야 할 노후를 이제 준비해야 합니다.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는 내가 가진 모든 경험을 사용하여 노후를 준비하는데 몰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