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휴일이었습니다. 빅** 도넛 개업한 지 한 달이 넘어 첨으로 편히 쉬어봅니다. 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에 차이가 있지만 때론 그 차이를 무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눈 꼭 감고 직원에게 운영을 맡기고는 가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늦잠을 잤습니다. 평소 아무리 늦게 자도 7시면 눈이 떠졌습니다. 가게가 걱정되어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늘 도넛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곤 했고, 아침을 허둥지둥 먹고는 가게로 달려갔습니다. 일단 가게에 가면 할 일이 태산입니다. 곳곳이 세심한 손길을 기다리는 일들입니다. 청소, 저리, 서류, 보고, 재고, 도너를 만들고 팔기, 직원 관리, 돈 관리... 그렇게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흘러 밤이 되곤 합니다.
내가 없다고 가게가 운영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세심한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작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제대로 빨지 않은 걸레에서는 냄새가 나고 행주로 쓰는 타월은 더러워지고, 도넛의 품질은 조금씩 떨어지고, 물건들은 헤프게 쓰기고 하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이런 이들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최대한의 이윤을 만들어 내는 게 내 역할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다 보면 치쳐버립니다. 몸이 지치면 맘도 지치고 여유가 없어집니다. 그건 곧 심신이 힘들고 괴롭다는 것이고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불행'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매우 바빴던 지난 한 달여의 기간 동안 나는 매우 힘들었고 지쳤고 불행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행복했습니다. 늦잠을 잤서 행복했고 아내와 함께 재래시장에 돼지고기와 김치찌개 재료를 함께 사 행복했습니다.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쇼핑을 간 사이 꿀 같은 낮잠을 자 행복했습니다. 어젯밤 다운로드한 영화를 잠깐 보고 인터넷을 통해 한국 상황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게에서는 아무런 전화도 없었고, 그건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니 이 또한 행복했습니다.
저녁 무렵에는 아내와 함께 근처 바닷가로 갔습니다. 동해안이니 해가 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낮에도 이곳에 와봤었는데, 낮에는 태양이 뜨거워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해가 지는 시간에는 주차공간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서쪽으로 해가 지니 동해안인 콴탄의 해변은 시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를 거닐거나 바닷물에서 수영을 하고, 또 해변에서 연 날 리를 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아내와 나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았습니다. 더위는 간 곳 없고 모기 또한 없으니 아이들과 함께 왔으면 돗자리 깔고 앉아 저녁을 함께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와 나는 그곳에 오래 앉아 있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주어야 했고, 또 해변에 오래 앉아 있기도 별로 재미없는 일이었습니다. 한 십여분 정도 앉아있었는데, 이 시간이 또한 내겐 행복이었습니다.
내가 오늘 한 것들은 모두 작은 일들이었습니다. 조금 늦잠을 자고, 영화를 보고, 낮잠을 자고 또 해변에서 잠깐의 시간을 보낸 게 전부인데 난 행복했습니다. 행복은 전염이니 아내 또한 행복했고 아이들도 행복했습니다.
확실히 행복이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찾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현실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아무리 편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도 고통은 늘 따르기 마련일 것입니다. 하루 종일 편히 누워 있는 사람이라 해도 등과 엉덩이가 배기는 고통이 없을 수 없는 것처럼 무엇을 하고 어떤 곳에 살든 사는 것 자체는 고통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건 그 속에서 느끼는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행복을 찾는 사람이 있고 못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잠깐의 여유 속에서, 여유를 행복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시간에도 앞날과 지나온 날을 걱정하며 고통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문에 행복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 확실합니다.
걱정거리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도 제게는 많은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삶은 늘 고통이면서 불안의 연속입니다. 과거는 후회이고 현재는 고통이고 미래는 불안입니다. 이는 살아 있기에 가져야 하는 운명 같은 것이죠. 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한 후에 편안한 행복감을 갖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걱정거리가 있어 불행하다는 것은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름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행복할 수도, 언제나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말하는 나도 늘 고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고통보다 행복한 시간이 많은 사람은 아마도 성인군자일 것입니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많은 고통 속에서 살면서 가끔 만나는 행복을 단비처럼 받아 내일을 기약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한 것은, 가급적 많이 그 행복을 찾는 것입니다. 가끔씩 내리는 그 단비를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것이지요. 단비는 하늘에서만 내리는 게 아니라 샘물처럼 땅에서도 솟아나니 말입니다.
2022년 12월 현재
*모처럼 휴일을 맞은 날이었나 봅니다. 글에 여유가 있군요. 앞선 포스팅에서 말했지만 말레이시아에 도착 후 6개 월간 집, 학교 그리고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고단한 시간이었습니다. 며칠 전 작은 아이의 중국계 공립학교인 페이차이 입학통지서까지 받게 되어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물론 이 뒤로도 많은 일들이 생깁니다. 좋은 일 나쁜 일 그렇고 그런 일들이 모든 삶의 순간에 놓입니다.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 이런 글을 읽으니 여러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