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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이주기(울고 있는 딸에게 2008.06.12)

진두-볼레리 2022. 12. 31. 19:08

딸, 벗님에게

 

네게서 전화가 왔을 때 아빠는 거실에 있었단다. 오랜만에 휴일을 맞아 집에서 쉬고 있었지. 전화벨이 울리자 엄마는 급하게 전화기를 들었고 '벗님아...'라는 말에 네게서 전화가 온 걸 알았지. 하지만 그 시간에는 네게서 전화가 올 때가 아니었기에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늘 밝고 씩씩한 우리 딸이었기에 그저 뭔가 부탁하려고 전화했나 보다 했었단다.

 

"벗님이가 울어"라고 엄마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아빠에게 말했단다. "왜?" "영어가 어렵데" "..." 아빠는 잠시 띵한 느낌이 들었단다. 영어가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것 때문에 그 시간에 울면서 전화를 할 정도로 네가 힘들다는 게 아빠에게는 조금은 충격이었단다. "뭐가 힘들데?" "그건 말 안 하던데..." 아빠와 엄마는 생각했단다. 이번에 본 시험 성적이 잘 안 나왔는지, 영어를 잘 못한다고 선생님한테 꾸중을 들었는지, 교실에서 창피를 당했는지...

 

벗님아. 아빠는 오늘 네게서 온 전화 때문에 많은 생각을 했단다. 지금까지 아빠가 보아 온 벗님이는 힘이 들어도 묵묵히 참고 견디는 아이였지 힘들다고 우는 아이는 아니었단다. 우는 게, 눈물을 보이는 게 잘못도 아니고 창피한 것도 아니다만 그렇게 힘들다는 게 아빠의 마음을 아프게 했단다. 와디 소피아 국제학교에 간 지 벌써 두 달이 되었고, 그 시간 동안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지금까지 말을 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오늘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 네가 힘들고 또 앞으로도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아빠나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나 가슴 먹먹하기는 마찬가지란다. 엄마나 아빠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하겠건만 공부는 오로지 너의 몫이기에 우리는 그저 참고 기다리는 일 밖에 없구나.

 

하지만 아빠는 또 생각했단다. 네가 울었다는 것, 너무 힘들고 참기가 힘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울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는 것, 그것은 네가 좀 더 발전할 힘이 있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너의 전화를 받고 가슴 아팠지만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단다. 네 눈물이 의미하는 것은 네가 그만큼 공부에 열정이 있다는 것이란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열정이 없다면 눈물도 없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내가 오늘 흘린 눈물은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기름 같은 소중한 것이라는 걸 너도 이다음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야.

 

벗님아, 세상의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살지만, 모든 사람이 눈물 뒤에 웃는 건 아니란다. 눈물을 흘린 뒤에 어떤 맘으로 다시 부딪히고 이겨나가느냐가 중요한 거지. 눈물을 흘린 뒤 포기하고 돌아선 사람은 결코 웃을 수 없는 거야. 엄마와 아빠는 알고 있단다. 앞으로도 네가 더 많은 눈물을 흘릴 것을 말이야. 다시 말하지만 눈물은 잘못도 창피도 아니지만, 눈물 때문에 포기하는 것은 진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란다. 눈물을 흘리고 그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만이 웃을 수 있는 거야.

 

벗님아, 아빠는 네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단다. 네가 공부를 잘해 훌륭한 사람이 되고, 네가 원하는 작가가 되고, 아니면 꿈이 바뀌어 그 무엇이 되고 무엇을 하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여 네가 행복하게 사는 게 엄마와 아빠의 소망이란다. 지금 네가 와디소피아에서 어려운 영어와 씨름하며 공부하는 게 네게 행복이 아닐 수 있지만, 행복은 열 가지의 고통 뒤에 오는 한알의 열매 같은 것이라서 열 번의 눈물이 없으면 그 소중한 하나의 열매를 맛볼 수 없는 것이란다. 하니 오늘 네가 힘들지만 그 힘든 걸 이겨내야만 네일의 열매를 가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조금 더 참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해주고 싶구나.

 

오늘은 아빠가 오랜만에 집에서 쉬었단다. 점심을 먹고 꿀 같은 낮잠을 잤더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뿐하구나. 네게서 힘들다는 전화가 오긴 했지만 네가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고난이기에 아빠는 그리 큰 걱정하지 않는단다. 저녁을 먹고 슈퍼에 가 먹을거리를 사 오고 오랜만에 한결이와 수영을 했단다. 참, 네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쿵푸펜더' 다운로드해 놓았으니 다음 방학 때 와서 같이 보자꾸나. 

 

소피아국제학교-기숙사-건물
소피아국제학교-기숙사-건물

 

2022년 12월 현재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아이에게나 우리에게나.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친구들과 갈등을 일으켰지요.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당시 와디 소피아 국제학교에는 아이들이 있는 어느 곳에도 에어컨이 없었습니다. 교실, 식당, 기숙사 모두. 그러니 찌는 더위를 피할 곳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것은 참기 힘든 스트레스였을 것입니다. 

*이후 쿠안탄 국제학교로 옮겨 잘 지냈습니다. KL에서 칼리지 졸업하고 이제는 말레이시아에 터를 잡고 잘 삽니다. 아내와 나의 역할은 다 했고, 자기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