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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이주기(살아 남기 위해 잠 못드는 밤에 2007.11.28)

진두-볼레리 2022. 12. 15. 01:45

말레이시아에서 생존하기

말레이시아에 온 지 오늘로 9일째가 되었습니다. 지난 화요일 밤 10시에 도착하였으니 일주일이 넘은 것입니다. 마치 한 달을 산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작은 아이가 "여긴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요?"하고 묻는 거였습니다. 한국에서의 일주일은 금방 가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여긴 처음 온 곳이고 모든 게 새롭기 때문에 시간이 늦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나 역시 시간이 매우 느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곧 적응이 되면 시간이 빨리 가겠지요. 너무 빨리 가서 걱정이겠지요.

 

처음 말레이시아에 오려고 생각했을 때, 많이 망설였던 부분은, 어차피 삶이라는 게 한 순간인데 한국에서 사나 말레이시아에서 사나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거였습니다. 내가 무슨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겠다고 낯익고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내 결심을 붙잡곤 했습니다. 행복이란 장소로 정해지는 게 아니고 마음에 따라 정해지는 것인데 그 맘이라는 게 어딘들 달라질까 싶은 거였죠. 어찌 생각하면 우리 삶이라는 게 무척 단순합니다. 일하고 돈 벌고 먹고 쓰고 아이들 교육시키다가 늙으면 죽음을 기다리고... 그러다 죽는 거지요. 삶이 뭐 있겠습니까.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니 삶이 뭐 있겠습니까, 였습니다. 한국에 있으나 말레이시아에 있으나 역시 일하고 벌고 먹고 쓰고 아이들 교육시키는 건 같다는 것입니다. 하니 한 번 낯선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해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낯익은 곳이 익숙하기는 하지만 사람을 게으르게 만듭니다. 모든 게 익숙하니까요. 나는 그게 싫었습니다. 낯익은 곳에서 그냥 익숙하게 살다가 늙어가는 게 싫었던 겁니다. 그래서 나는 낯선 곳에 나를 던져놓은 것입니다. 그건 긴장이지요. 모든 게 낯서니 긴장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모든 게 새롭다는 것, 그건 모든 게 흥미롭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흥미는 삶을 흥미롭게 합니다. 배움은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말레이시아에서의 9일간의 생활이었지만 매일매일이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하지만 아직 나는 본격적인 말레이시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격적인 삶은 경제활동을 할 때 시작될 것입니다. 상대편 주머니의 돈을 합법적이고 합리적으로 내 주머니로 끌어 오기 위해서는 정말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열대의 나라 말레이시아라 해서 이 원칙에서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여기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자본주의 나라이고 모두 풍요롭게,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도 내게 자기 주머니의 돈을 그냥 주지 않습니다. 하니 나는 그들과 어울리고 경쟁하고 노력하여 돈을 벌어야 합니다. 이러한 경제활동이 시작되어야 진정한 삶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난 아직 가진 돈으로 살고 있으니 재밌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은 좀 쓰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오직 벌기만 하지 않았습니까. 그냥 일만 하지 않았습니까. 한국사람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로지 일하여 돈을 벌지요. 돈 버는 것 자체가 삶의 목표인 것처럼 말입니다. 나도 뭐 달랐겠습니까.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살기 위해 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좀 쓰려고 합니다. 여기서 펑펑 쓰지는 못하지만 버는 걱정하지 않고 아껴 쓰면서 이 사회를 배우고자 합니다. 길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내 인생 최고로 행복한 기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 나도 좀 행복할 자격이 있으니까요.

 

그 뒤로 무엇을 할까, 어떻게 될까는 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1년 정도 영어 공부와 이 사회를 배우고 나면 길이 있겠지요. 이건 자신감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고 합니다. 사람이 사는 사회라는 게 무한경쟁이기도 하지만 공생이기도 합니다. 내가 신뢰를 주면 그 사람도 내게 신뢰를 준다는 거지요. 그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만나는 사람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신뢰를 주면 그들도 나를 믿을 것입니다. 믿는다는 건 내게 뭔가 역할을 줄 수 있다는 것이고 그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경제활동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믿음을 줄 수 있다면 살아가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안될 것입니다.

 

 

2022년 12월 현재 말레이시아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고백일 뿐입니다. 삶은 여기서 사나 저기서 사나 마찬가지 일 정도로 단순하지 않습니다. 나는 좀  더 치열하고 정밀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내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술 취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발자국을 남긴 것 같습니다. 말레이시아로 온 것을 후회함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너무 단순하고 유치했다는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는 나의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은 반성의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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