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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이주기(현실로 다가 온 말레이시아에서의 생존 2007.12.05)

진두-볼레리 2022. 12. 16. 00:11

실감나기 시작하는 이주의 어려움

 

오늘은 내가 여행은 온 게 아니라 이곳에 살러 왔다는 걸 실감한 날이었습니다. 그것은 갑자기 내 가슴을 파고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힘들어서이기 때문일 겁니다. 어제와 오늘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내 공부하고 집으로 오는데 많이 지치더군요. 그동안 수영장이나 인터넷을 뒤적이며 한가로이 지냈었지만 내가 여행 온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왔다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낭만적으로 보이던 말레이시아의 풍경이 벗겨지고 내가 부딪혀 생존해야 할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는 자각이었습니다. 그것은 다소간의 두려움이고, 걱정이며 불안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이주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제와 오늘 리마 칼리지에서 이틀간 영어공부를 했는데 영어는 그리 어렵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이 가슴 밑으로 파고들어 왔습니다. 생각해보면 난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가진 돈도 충분하지 않고, 기술도 없습니다. 나이마저도 40대 중반이니 부려볼 만한 패기마저도 여의치 않습니다. 

 

이곳은 먼저 와 터를 잡은 사람들 말합니다. 말레이시아가 먹고 살기가 만만치 않다고. 쉽지 않으리라 예상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부딪히면 뭔가 길이 나오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보다 높았고, 기대는 기대일 뿐 길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4~5개월 영어 공부가 끝날 것입니다. 그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 막막할 뿐입니다. 지난 며칠 전부터 고민해 보았습니다. 식당에 가 일을 해야 하나, 단란주점에서 일해야 하나, 아님 어디 가서 허드렛일을 해야 하나... 영어 공부가 끝나고 나면 무역회사 같은 곳에 갈 수도 있다고 하고, 또 갈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니 내 나이에 가서 뭔가를 새롭게 한다는 것도 그렇고 또 월급 생활해서야 언제 이 낯선 땅에서 자리 잡고 살겠느냐는 생각도 들더군요. 물가도 싸지만 인건비도 싸니 겨우 아이들 교육시키고 먹고사는 것 외에는 뭐 있겠냐는 것이죠. 그럼 길은 하나인데, 이곳에서 장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업은 한국 제품을 파는 마트와 식당이었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나는 자신이 없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뭔가를 하여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어디에도 그 작은 실마리조차 보이 지를 않습니다. 장사를 해 본 경험이 없으니 작은 양말 가게 하나 낼 궁리가 나질 않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한 번의 실패는 치명적이 될 수 있습니다. 돈도 잃고 가족도 잃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실패에서 오는 초조함과 불안이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서로의 잘못을 들춰내게 되고, 그러면서 싸우고 증오하고... 날은 더운데, 음식은 입에 안 맞고, 왜 이런 곳에 오자고 했냐고 아픈 곳을 들춰내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겠죠. 미움은 미움을 불러오고 그 감정은 아이들에게까지 전염되어 불안해하고.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최악의 시나리오일 뿐입니다. 최악이 오는 이유는 미리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죠. 당황스러운 겁니다. 생각지 못했으니까요. 실패할 수도 있겠죠. 만약 실패하면, 다시 시작할 자본이 없다면 노동을 하면 될 것입니다. 식당이나 단란주점 종업원이든, 무엇이든 일을 해서 다시 시작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실패하지 않는 것일 겁니다. 처음부터 욕심내서 올인 하지만 않는다면 실패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상유지는 하겠죠. 그리고 손 털고 다른 걸 시작하면 될 것이고요.

 

하지만 걱정인 건 사실입니다. 뭔가를 해야 하는데 손에 잡히는 게 없으니 말입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더 공부하고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이 사회에서 내가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2022년 12월 현재 말레이시아는

 

*2022년 오늘, 다시 생각해보아도 무모한 결정이었습니다. 나는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결정을 내리고, 어린 두 아이들을 데리고 먼 말레이시아로 갔던 것일까요? 이런 상황에서 15년이나 생존했다는 것이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아이 두 명 모두 국제학교 보내고, 칼리지까지 졸업시킨 것이 비정상이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정리하기 전까지는 나의 결정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지만,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참으로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 다시 온다면 또 갈등할 것 같습니다. 15년의 시간 동안 얻은 것도 많기 때문입니다. 

 

말레이시아-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