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alaysia-life.tistory.com/googleda2e2cfdeffc91a7.html 말레이시아 이주기(나의 하루 200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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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이주기(나의 하루 2007.12.06)

진두-볼레리 2022. 12. 16. 00:11

우리의 하루는 이렇습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납니다. 근처 골프장을 끼고도는 산책로를 한 바퀴 돌면 7시 반 정도 됩니다. 나는 아침 준비를 하고 아이들은 씻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시간이 좀 남으면 TV를 보고나 인터넷을 하거나 전날 공부를 많이 못했으면 공부를 합니다. 9시 즘 집을 나와 택시를 탑니다. 택시는 자주 오지 않지만 한 10분 정도 기다리면 빈차가 옵니다. 셋이서 택시를 타고 3분 정도 가면 큰 아이 학원이 있는 암팡 에비뉴가 나오고 거기서 큰 아이가 먼저 내립니다. 사실 큰 아이 학원 시작 시간은 오전 10시부터인데 작은 아이가 9시 반부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도착해야 합니다. 거기서 나와 작은 애는 그 택시를 이용하여 다시 7~8분 가야 하는 '판단 퍼다나'라고 하는 곳으로 갑니다. 그곳의 선생님 집에서 작은 아이가 공부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움직이면 택시비는 8링깃(2천4백 원 정도)이 나옵니다. 거기서 작은 애를 선생님 집에 들여보내고 난 근처 중국식당으로 갑니다.

 

근처에는 그 중국식당 밖에 없어 갈 곳이 없습니다.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붐빕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의 식당은 그냥 끼니를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사교의 장소이기도 하죠. 작은 아이를 들여보내고 나면 9시 반이 조금 넘는 시간인데 그때부터 내가 점심을 먹을 때까지 동네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식당을 드나듭니다. 그냥 커피나 과일주스, 맥주 한 잔을 놓고 마냥 앉아 이야기하고 담배 피우고 신문 보고 그럽니다. 그렇게 오래 앉아 있어도 주인이 눈치를 주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나도 주스나 커피를 한잔 시키고(1.5~2링깃 이내) 작은 아이가 끝나는 시간까지 앉아 있습니다. 역시 눈치 받을 일은 없지요. 그냥 앉아 있는 건 아니고 나도 공부를 해야 하니 영어 책을 펴놓고 읽습니다. 두 시간 공부하면 꽤 많은 양을 볼 수 있습니다. 12시가 되어갈 즈음 그 식당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이 식당은 보기에는 허술한데 맛은 참 좋습니다. 아니 내가 먹어본 대부분의 식당들이 음식 맛이 좋았습니다. 내가 입이 까다롭지 않아서 그럴 것입니다. 처음 말레이시아에 와 음식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말레이시아-동네-식당

 

이른 오전인데도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작은 아이를 기다리면서 내가 앉아 있는 식당입니다. 

 

 

 

말레이시아-식당-음식

 

부페식으로 진열된 반찬입니다. 말레이계, 인도계 식당도 이런 구성입니다. 자기가 먹을 만큼 담아 주인에게 보여주면, 주인은 힐긋 쳐다보고 가격을 매깁니다. 담은 반찬의 가짓수를 먼저보고, 그 양이 많으면 약간 더하는 것 같습니다. 손님이 직접 일회용 용기에 음식을 담습니다. 말레이시아는 포장해서 가져가는 사람 수가 더 많습니다. 그 자리에서 먹는 사람들은 접시에 담지요. 오직 접시 하나에 음료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많은 반찬을 각각의 그릇에 담지 않습니다 최대한 비용을 줄이고 가격을 낮추는 것이지요. 집에서 요리해 먹는 것과 비용면에서 별 차이가 없으니 대부분 이렇게 식당에 와 간단히 해결하는 것입니다. 

 

 

내가-먹은-밥-밥-닭고기-두부-야채-소시지가 보인다
 
어제 내가 선택한 메뉴입니다. 말레이시아 음식은 짭짤하고 매콤해서 우리 입맛에도 맛습니다. 상해나 북경에서 먹는 중국음식 특유의 향료는 이곳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맛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식당들은 대부분 뷔페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면 접시에 밥을 퍼줍니다. 그러면 그 위에 종류별로 반찬이 들어 있는 판에서 원하는 반찬을 그 위에 담습니다. 식사 때 음료수를 곁들이는 게 이곳의 문화입니다. 맹물이든 커피나 주스이든 꼭 곁들여 먹습니다. 식당 주인 입장에서는 음료가 꽤 좋은 수입이 될 것입니다. 가격은 식당마다 다르지만 위와 같은 식당은 대중적이고 서민적이라서 비싸지 않습니다. 시내에서 먹으면 한 끼에  7~8링깃, 작은 아이를 기다리면서 먹는 이 식당에서는 4~6링깃 정도 나옵니다. 1,500원 내외이니 우리 밥값을 생각하면 싼 편입니다.

 

 

세탁소-모습

세탁소입니다. 세탁소가 연이어 두 개나 있습니다. 담요는 45링깃(약 1만 3천 원)이라고 하더군요. 왜 이리 비싸냐고 했더니 담요는 특수한 거라 합니다. 담요 말고 이불은 22링깃(6천 원)이라 합니다. 

 

이렇게 점심을 먹고(작은 아이는 선생님 집에서 그 식구들과 함께 먹습니다.) 작은 아이와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옵니다. 집 앞에서 작은 아이를 내려주고 나는 그 택시를 타고 암팡 포인트까지 가서 버스를 타던가 시간이 없으면 그 택시로 바로 리마 칼리지까지 갑니다. 암팡 포인트까지 가면 8링깃 정도, 리마 칼리지까지 가면 10링깃이 조금 넘게 나옵니다. 그런데 작은 아이를 집 앞에서 내려주고 나면 늘 걱정이 됩니다. 이곳은 좀도둑이 상당히 많습니다. 혹 작은 아이 혼자 있는데 좀 도독이 들어왔다가 해코지 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는 것이지요. 특히 어제 택시기사가 막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아이 혼자 있다가 '띠프(도둑)'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들이니 내내 걱정이 되더군요. 그냥 괜찮으려니 하면서 지내고는 있지만 걱정이 됩니다. 

 

리마 칼리지에서 나는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수업을 듣습니다. 그전에 큰 아이가 오후 4시에 학원을 마치고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갑니다. 버스는 4 정거장 밖에 안되기 때문에 얼마 걸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버스정류장까지 10분 정도 걸어가야 하고 정류장에서 길게는 40분이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5시가 가깝습니다.

 

리마 칼리지에서 6시에 수업을 마치면 버스를 타고 암팡 포인트에 들러 식료품을 사서 버스를 타고 갑니다. 그런데 KL 시내는 퇴근시간이 되면 교통 체증이 심합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한참을 걸어 버스정류장까지 가기도 힘이 듭니다. 하여 오늘은 칼리지 근처의 LRT(우리의 지하철)을 타고 암팡 스테이션까지 왔습니다.

 

집에 가기 위해 LRT 표를 샀습니다. 가까운 거리면 1링깃입니다. 주의하여야 할 점은 노선이 다르면 표를 쓸 수 없습니다. 나는 20링깃짜리 정액권을 가지고 있어서 그걸로 쓰려다가 "삐"하는 부저음으로 망신스러웠습니다. 그리고 환승이 가능한데 우리는 표 하나로 다 환승을 하지만 이곳은 다시 나가 새로운 표를 끊어 새로운 역으로 가야만 합니다. 확실히 대중교통은 우리나라보다 불편합니다.

 

 

LRT를-타기위해-줄선-사람들

칼리지 근처의 LRT역의 모습입니다. 퇴근 시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엄청 많습니다. 이 사진 뒤로 한 대가 왔는데 사람이 많아 더 줄 서 있다가 다음 차를 타야 했습니다. 여기는 이슬람 국가이어서 그런지 막 우겨 타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기다렸다가 다음 차를 타더군요.

 

LRT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KL 시내가 차가 막히니 이곳 LRT라고 사람이 적을 리가 없지요. 억지로 타 겨우 암팡 스테이션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암팡 스테이션으로는 처음입니다. 낮에 작은 아이 데려다 주기 위해 와 보았지만 퇴근 시간에 이곳에 와 보긴 처음이었던 것이지요. 우선 근처 마트에 들러 식료품을 샀습니다. 우유, 과일, 빵, 찬거리, 생선 등등...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칼리지에서 공부할 때부터 내리던 비가 더 많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데 차는 엄청 막히고 택시는 잡히질 않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려고 해도 번호를 모르니 갈 수 없고, 안다 해도 또 갈아타야 하니 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비가 오니 차가 막히고 사람들은 택시를 이용하고 내가 탈 수 있는 택시는 없었습니다. 어쩌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면 서지도 않고 지나치고... 오늘 산 우유, 과일, 빵은 두 봉지나 되니 한쪽은 책, 한쪽은 식료품, 그리고 어깨에는 가방이 걸려 있으니 팔은 아프고, 비는 내려온 몸은 젖어 들어가고, 집에 있는 아이들은 걱정되고... 그렇게 한 30여분을 거리에서 헤맸습니다.

 

비 오는 거리를 헤매고 있으니 참 서글퍼지더군요. 한국에 있을 때는 지방이었기 때문에 차가 막히는 일은 거의 없었고, 또 차가 있었기 때문에 물건을 들고 다녀야 할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 비 오는 저녁 허기를 참으면서 낯선 거리에서 택시를 잡기 위해 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생활이 내내 이어질 수도 있을 거란 불안함이 밀려왔습니다. 곧 날아올 아내 역시 이런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집에는 도착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저녁을 먹었습니다. 자기들끼리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더군요. 늦은 저녁을 먹고 컴퓨터를 켜고 나서야 긴장이 풀리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8시가 됩니다. 이때부터 9시까지 큰 아이는 혼자서, 작은 아이는 내가 그날 배운 것을 가르칩니다. 영어나 중국어(한자 정도), 수학은 좀 봐주겠는데 말레이어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학교 가서 배우겠지, 하는 생각으로 놔둡니다. 하지만 영어와 중국어는 해야 하니 같이 공부합니다.

 

오늘도 힘든 하루를 살았습니다. 이곳은 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건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이면서 외로움이지요. 누군가의 간섭이나 관심의 대상이 안 된다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날 수 없다는 건 외로움이지요. 자유와 외로움 어느 것이 더 클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더 좋아지겠지요.

 

2022년 12월 현재 말레이시아는

*그날 그 자리가 생각납니다. 비 오는 거리에서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택시를 타려 했던 날입니다. 이런 삶이 계속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밀려왔던 날이지요. 그 불안은 어느 정도는 맞았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우리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내내 비 오는 거리에서 비를 맞으며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낡았지만 차도 마련했고, 잠깐이었지만 집도 샀었습니다. 부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삶은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