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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이주기(말레이시아의 비 2007.12.08)

진두-볼레리 2022. 12. 16. 09:56

말레이시아의 비

케이크에 성냥개비를 14개 꽂았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일어나기 전이지요. 늘 다니던 운동도 오늘은 가지 않았습니다. 늦잠을 잤기 때문이기도 하고 큰 아이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어제 케이크를 사면서 초가 없다기에 오늘 성냥개비로 대신한 것입니다. 늘 늦잠을 자는 큰 아이를 깨워 식탁에 앉히고 성냥개비에 불을 붙였습니다. 작은 카드에 축하 메시지도 써 주었지요. 아내가 없는 게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미역국은 끓여주지 못했습니다. 내가 끓일 줄 모르거든요. 아침은 그렇게 케이크와 치킨과 빵을 먹었습니다.

 

오늘까지 3일 간 비가 내렸습니다. 한국의 장마철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렸습니다. 난 비를 좋아합니다. 비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사랑하지요. 특히 내가 살았던 곳의 빗소리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나뭇잎과 풀 위에, 바위 위에,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그리고 그 빗물이 홈통을 타고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행복해지죠. 난 황순원의 소나기란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곳에서 소년과 소녀가 소나기가 내리자 볏가리 속에 들어가지요. 소녀는 소년에게서 확 풍기는 비린내를 맡습니다. 하지만 말하지 않지요. 그리고 둘은 그 볏가리 속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봅니다. 그런 경험이 있나요? 그건 굉장히 아름다운 경험입니다. 나도 어려서 그런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볏가리가 살갗을 찌르는 깔깔함이 지금도 느껴지지요. 하지만 온 세상이 빗물에 젖어들어가는데 나만이 그 아늑한 공간 속에 있다는 행복감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난 지금도 비를 좋아하는가 봅니다.

 

하지만 이번 3일간 내린 비는 내게 아무런 느낌도 주질 않는군요. 오직 차는 막히고 택시는 잡기 어렵고 들고 있는 짐은 어깨가 빠지게 무겁다는 생각 뿐. 이런 게 늙는다는 것이지요. 낭만은 사라지고 현실만이 남는, 그런 것. 뭐 어쩌겠습니까.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늙어야 하고, 늙으면 그렇게 생각도 바뀌어야지요...

 

 

말레이시아에서 공부하는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

 

작은 아이를 공부시키고 택시를 타고 부리나케 리마 칼리지로 갔습니다. 10분 정도 늦었더군요. 그런데 오늘 강사가 아파서 안 나왔다는 겁니다. 어제 못 온다는 이야기는 했었지만 다른 강사가 해주기로 했었거든요. 근데 아무도 안 나왔다는 겁니다. 결강이지요. 이곳은 학생도 자주 결석하고 강사도 시간을 잘 안 지키나 봅니다. 덕분에 우리끼리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요. 오늘 나온 학생들은 사무실에서 전화로 연락했는데 못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바크다하르, 소말리아의 알리와 오마, 그리고 수단에서 온 18살의 소녀 샤자와 하본이었습니다. 어제 내가 하본이 소말리아에서 왔다고 했는데 오늘 이야기하다가 그녀는 소말리아가 아니고 드지보우티(Djibouti)라는 걸 알았습니다. 난 오늘 처음 들어보는 나라입니다. 소말리아와 같은 언어를 쓰는 걸 보아서는 인접한 나라 같습니다.

 

하본이 오늘 내게 흥미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하본은 어제도 말했지만 지식이 많은 여학생입니다. 프랑스에서도 상당히 오랜 기간 유학을 했다 하더군요. 프랑스어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할 정도로요. 영어도 무척 잘합니다. 그녀는 한국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북으로 갈라졌다는 것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나뉘었다는 것, 남한이 경제적으로 발전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소말리아 학생들이 말레이시아 보다도 우리가 더 못 사는 나라로 아는 것에 비하면 지식이 많은 것이지요.

 

그녀의 제안은 자기네 나라에서 생산되는 식물성 기름을 우리나라에 수출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올리브유와 같은 식물성 기름이겠지요. 가격이 어떤지, 제품이 어떤지는 이메일을 통해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이제 23 살 된 드지보우트의 그녀는 굉장히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너희 나라에는 우리의 어떤 물건을 팔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요. 배가 하역을 하면 빌 것이고, 그 빈 배가 돌아갈 수는 없지 않으냐고.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는지 알아본다고 합니다.

 

나 역시 그녀의 제안이 기뻤습니다. 난 무역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식품이니 식약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 정도는 하겠는데 무역이 어떤 절차로 이루어지는지는 알지 못하지요. 이제 배워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녀의 제안이 실제로 이루어지면 좋고, 안 이루어진다 해도 무역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젠 내가 가진 모든 촉수를 곤두 세워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요. 지난 시간의 내 수입은 월급이었습니다. 내 스스로 무언가를 생산해야 할 일은 없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할 때이든, 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할 때이든 주어진 일만 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내 스스로 돈벌이를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비 오는 거리에서 하염없이 택시를 기다리면서 빈 택시가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그런 생각에 빠져있었습니다. 이미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내겐 매우 새로운 것입니다. 사고의 전환인 것이지요. 그동안 젖어 살았던 사고의 체계를 벗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날입니다.

 

 

2022년 12월 현재 말레이시아는

*지나고 생각하니 유치한 일들이었습니다. 영어 공부를 했던 것도,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 것도. 영어는 굳이 학원에 가 배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학생이라면 몰라도 나처럼 살기 위해 간 사람이라면 당장 현장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식당에서 접시를 닦던, 쓰레기를 치우든 말이지요. 결국 나는 1달도 채우지 못하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말레이시사-쌍둥이빌딩-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