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서 대낮에 칼을 든 강도를 만나다
오늘 오후 1시에 강도를 만났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살면서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라고, 좀도둑에게 당할 수도, 날치기를 당할 수도, 더 재수가 없으면 잠자고 있는 집에 도둑이 침입할 수 있다고 예상은 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대낮에 큰 도로변에서 칼을 들이대는 강도를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후 1시 암팡 시내에서 강도를 만나 여권과 300링깃(10만 원 정도)이 든 지갑 그리고 핸드폰을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어깨를 칼에 베이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 시간은 오후 1시 가까이였습니다. 암팡에 있는 티아라두타 콘도에서 암팡포인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여권 등이 작은 가방을 뒤에 메고 있었습니다.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있었습니다. 티아라두타 콘도에서 암팡 에비뉴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상가와 이슬람 사원과 식당이 있는 길을 지나 2차선 도로를 건넜습니다. 암팡 에비뉴 방향으로 가려면 작은 샛길을 하나 지나야 합니다. 그 길이는 20 미터 가량 될 것입니다. 집 한 채 지을 정도의 크기입니다. 늘 풀이 무성히 자란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 한 사람 걸을 정도의 길이 나 있습니다.

가방과 여권 지갑 등을 빼앗기다
그 길로 접어들었을 때 뒤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났습니다. 누군가 좁은 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려나 보다 하고 길을 내주기 위해 옆으로 비켜섰습니다. 오토바이에는 두 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한 명은 운전을 하고 한 명은 뒤에 타고 있었습니다. 둘 다 짙은 헬멧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내 옆을 지나지치 않고, 나와 나란히 오토바이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2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말레이계인지, 인도계인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뒤에 있는 녀석이 헬멧을 쓴 채 내게 뭐라고 말을 합니다. 나는 그가 내게 길을 묻는 줄 알았습니다. 나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돈 내놔'라고 한 것 같은데, 강도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요. 게다가 소리는 헬멧 안에서 나오고 있었고, 그들이 영어로 말했는지, 말레이어로 했는지 지금도 모릅니다.
그는 두 번인가 세 번 말했는데 내가 알아듣지를 못하자 짜증이 났나 봅니다. 내가 뒤에 둘러맨 가방을 낚아채려 했습니다. 나는 이제야 그들이 강도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 칼은 이미 내 배를 향해 있었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강도는 칼을 든 손으로 내 가방을 낚아채려 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면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몇 걸음도 가지도 못하고 풀밭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때는 뭔가에 걸려 넘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녀석이 뒤에서 가방을 낚아채 그 힘에 넘어진 것이었습니다. 넘어지는 순간 돌아보니 그는 칼을 든 채 내게로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내가 일어서는 시간에 그는 내 앞에 와 있었습니다. 더 이상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칼이 바로 내 눈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방은 풀밭에 벗겨져 있었습니다.
그는 네게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패스포트, 패스포트!". 여권을 달라는 소리였습니다. 나는 가방을 가리켰습니다. 이번엔, "월렛, 월렛!"하고 칼을 들이대면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뒷주머니에 있던 지갑마저도 꺼내 주고 말았습니다. 지갑을 받아 든 녀석은 내게 "고, 고!" 하였습니다. 나는 뒤돌아서 뛰었습니다. 잠깐 뛰다가 뒤돌아보니 그는 바닥에 떨어진 내 가방과 핸드폰을 집어 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두르는 기색 없이 천천히 반대 방향으로 갔습니다.

위 사진이 강도를 만났던 작은 샛길입니다. 오른쪽 하얀색이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암팡에비뉴 콘도입니다. 나는 티아라두타 방향에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앞의 도로에는 차가 많이 다니는 길입니다. 사람도 많지는 않지만 적지 않게 다닙니다. 그리고 시간은 오후 1시였습니다. 이런 큰길에서, 대낮에 강도를 만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내가 티아라두타를 나올 때부터 따라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로 접어들자 칼을 꺼내든 것이겠죠.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미리 준비되어 있었을 겁니다.

강도를 당한 곳입니다. 집 한 채 지어질 만한 정도의 공간이기 때문에 으슥한 곳도, 외진 곳도 아니었습니다. 평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오토바이 소리에 옆으로 비켜선 곳은 사진의 중간정도 지점이었습니다

내가 걸어온 방향입니다. 보이는 것처럼 많은 차와 사람들이 왕래하는 대로변이었습니다. 이런 길에서 강도를 만난다는 게 정말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당한 것은 2~3분 정도였는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거나 심지어 관심조차 보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는 차 안에서는 이런 일들을 알아채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때는 걸어가는 사람들도 없었으니까요. 그날 경찰서에 갔더니 이런 날치기와 강도 사건은 자주 일어나는 일인 듯했습니다. 그들은 시큰둥한 반응으로 서류를 꾸미고 내게 한 말은 'Be careful'이었습니다.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도에게 칼에 베이다
강도를 당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마음은 화가 나기보다는 자괴감이 더 컸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걸으면서 보니 어깨 쪽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휘두른 칼에 어깨를 베인 것입니다. 경황이 없어 몰랐던 거지요. 하얀색 면티를 입고 있었는데 피가 배어 나와 붉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풀밭에 넘어져 한쪽은 파란 물이 들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픈 것도, 쓰린 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이것이 현실이라는, 이런 세상에서 내가 살아야 한다는, 그리고 내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찹찹함을 넘어 참담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기절할 듯 놀랍니다. 옷을 벗어 보니 그리 깊게 베이지는 않았습니다. 휘두른 칼이 스쳐 지나갔었나 봅니다. 생각해 보면 그 칼은 매우 예리했던 것 같습니다. 찌른 것도 아니고 스친 것임에도 예리하게 베어졌으니 말입니다. 상처를 치료하고는 사업 파트너에게 알렸습니다. 1시까지 가기로 했었는데 시간이 훌쩍 넘어버려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고, 또 여권을 잃어버렸으니 이에 대한 조치도 취해야 했습니다. 조금 후 달려온 파트너와 함께 우선 은행으로 가 카드를 정지시키는 일부터 했습니다.
이제 여권을 다시 만드는 일이 급했습니다. 다행히 여권사진 두 장이 남아 있어서 그걸 쓰면 되는데, 그전에 경찰서에 가서 사고를 신고하고 접수증(이곳에서는 letter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서류들을 이렇게 부릅니다)을 받아가야만 재발급 신청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먼저 1층에 가 여직원(경찰)에게 사건을 접수시키니 2층으로 올라가 형사를 만나라고 합니다. 형사는 좀 더 구체적인 사건 정황을 물어보면서 서류를 작성하는데 그가 그 범인을 잡으려는 의지는 없어 보였습니다. 수없이 발생하는 소소한 사건의 하나였을 터이니 그에게는 내가 당한 강도가 그리 심각한 사건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다니고 나서 집에 오니 해 질 녘이 되었습니다. 낮에는 몰랐는데 어깨와 허리, 목이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극도로 긴장하여 몸이 경직되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습니다. 이런 사회가 내가 살아야 할 사회라는 것, 언제 또 이런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는 것, 내 아내와 아이들도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내가 당한 같은 곳에서 2주 전에 중국인 남자가 똑같은 방법으로 강도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한인 여성이 날치기를 당했는데 핸드백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다가 넘어져 뇌를 다쳤고, 결국 숨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성 운전자가 주차를 하고 차 문을 열었는데 남자가 뛰어들어와 차를 빼앗았는데, 내리지 못한 여성운전자가 신호대기를 이용하여 탈출에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차를 찾았는데 껍데기만 남겨놓고 다 빼서 팔아먹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2022년 12월 현재 말레이시아는
*2022년 현재도 위험합니다. 이런 일들은 시간이 지나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소소한 강도나 절도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도착했던 2008년에는, 차 안에 10링깃(3천 원)을 보이게 두면 유리창을 깨고 가져갔습니다. 지금도 그럴 위험이 있지만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10링깃을 획득하는 이익보다 절도로 잡혔을 때의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즉 위험 대비 얻는 것이 너무 적다는 것이지요. 예전보다 잘 살게 되었기 때문에 이런 소소한 범죄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밤중에 침입하는 강도와 도둑은 여전하며 날치기 사건 또한 끊이질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조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