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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이주기(강도 사건 이후 2008.02.22)

진두-볼레리 2022. 12. 25. 10:06

여권 재발급

 

강도에게 여권을 빼앗겨 재발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오늘 아침 한국대사관에 가 여권 재발급 신청을 했습니다. 다행히 사진 2장이 있어서 바로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 한국대사과는 내가 사는 암팡에서 버스로 2 정거장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아침에 작은 아이 학원에 데려다주고 대사관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쯤이었습니다. 경비는 말레이시아인이었는데 내게 여권을 달라고 하더군요. 어제 강도를 만나 다 빼앗겼다고 하니 'police letter'를 달라고 합니다. 어제 경찰서에 가 진술하고 확인받아 온 것을 보여주니 인적사항을 적고는 문을 열어줍니다.

 

강도를-만나-여권을-빼앗긴-장소
강도를-만나-여권을-빼앗긴-장소

 

대사관 민원실에 도착하여 강도에게 여권을 빼앗겨 재발급받으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대사관 직원이 서식을 두 가지를 줍니다. 재발급신청서하고 분실경위서 그런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쓰면서 보니 학력을 쓰라고 되어 있던데, 여권 신청에 왜 학력이 들어가야 하는지 의문이었지만 그걸 안 쓰면 안 해줄 것이니 그냥 쓰기는 했습니다. 20대의 한국여직원은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해 주었습니다. 행정처리에는 큰 불만은 없지만 너무 행정적이라는 것이 좀 서운하기는 하더군요. 대사관이라는 곳이 재외 국민의 안전을 돌보는 곳일 터인데, 강도를 만나 다 빼앗겨 여권을 다시 하러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무적으로 여권을 재발급해 줄 뿐이었지요. 나 역시 공무원 생활을 해보아 그 속내를 알기는 하지만 서운한 맘이 드는 것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수수료가 꽤 비쌌니다. 151링깃 20센트입니다. 기간은 다음 주 화요일 찾으러 오라고 하니 4~5일 정도 걸립니다.

 

 

강도를 만난 후 트라우마

 

여권신청을 하고는 집으로 갔습니다. 몸이 안 좋더군요. 특히 목이 많이 아픕니다. 강도가 내 가방을 낚아챌 때에 목이 뒤로 젖혀졌던 모양입니다. 어제는 몰랐는데 오늘에서 여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활동을 하는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누웠다가 일어날 때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아프더군요. 한 일주일은 갈 것 같은데...

 

사실은 마음의 상처가 더 큽니다. 오늘 하루종일 그 일이 떠올라 정신이 몽롱했습니다. 그때 조금만 빨리 알아차렸다면 당하지 않았을 텐데, 다 빼앗기지 않고 재치를 부려 지갑은 빼앗기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한 대 치고 도망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와 아쉬움과 자괴감 같은 그런 아주 찝찝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그들을 또 보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콘도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그 두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 앞을 지나갔습니다. 뒤에 탄 녀석이 나와 잠깐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도 나를 기억할 것이니 쳐다보았던 것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기에 느낌으로 그들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서운 동네라는 걸 다시 실감했습니다. 어제 강도짓을 하고도 버젓이 동네를 활보하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뒤에 탄 녀석은 눈은 희번덕거리는 것이 새로운 대상을 찾고 있을 터였습니다. 그 대상에 또다시 내가 되지 말라는 법이, 내 아내가, 내 아이들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내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칼을 들이댈 것이란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칩니다.

 

교육을년 받는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특히 내 지갑 속에는 현금인출기 영수증이 들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내 통장의 잔고가 찍혀 있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이곳의 노동자가 벌기 위해서는 3년을 넘게 일해야만 가능한 액수입니다. 그 돈을 노리고 우리 아이들을 납치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나를 납치하여 비밀번호를 대라고 또다시 내 목에 칼을 들이댈지 모르는 일입니다.

 

2월 말까지만 암팡에서 지내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3월까지 있고 4월 초에 이사를 하려고 했는데 더 이상 암팡에서 지낼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위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사회입니다. 내가 아닌 내 가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내가 이곳으로 이주한 목적이 없어지는 것뿐 아니라 내가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로 온 것을 후회하거나 모든 걸 접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상황이 좀 어렵고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사회라는 게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한국에 산들 내가 껍질 속의 조개처럼 안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교통사고의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고, 길 가다 간판이 떨어질지, 다리가 무너질지, 건물 지붕이 내려앉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또한 한국에도 각종 범죄가 빈번히 일어나는 사회인 건 이곳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 빈도수가 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물리적 위험을 감수하고 조심하여야만 하는 일이기에 이번 일을 거울삼아, 예방주사로 삼아 더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2022년 12월 현재 말레이시아는

*강도 사건 이후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었죠. 그 뒤로 15년을 살았습니다. 한 번도 범죄에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주하자마자 강도를 만난 것입니다. 초기에 당했기에 더욱 조심하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말레이시아는 안전한 국가에 속합니다. 범죄 없는 나라는 없을 겁니다. 하니, 2022년 현재의 말레이시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치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